신문/잡지

[이코노믹리뷰] '은퇴자 영웅만들기 희망을 노래합니다'

관리자 0 1,757 2013.04.25 00:00

 

'은퇴자 영웅만들기 희망을 노래합니다'

2012021021370743994_1.jpg

[사진:이코노믹리뷰 이미화 기자]

 

삶의 절정기때마다 자발적 은퇴를 두 번이나 한 남자. 변화를 시도하며 은퇴란 새로운 출발,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준 남자. 이제는 인생 후반전을 아예 은퇴자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직접 나섰다. 대한은퇴자협회 회장 주명룡 씨(67)의 드라마 같은 인생 이야기는 시작부터 흥미로왔다.

 

1972년 여름, 군 제대 후 하릴 없이 시간만 보내던 한 청년은 무작정 국내 최고 항공사를 염두에 두고 입사지원서를 쓰기 시작했다. 들이밀 것은 달랑 2년제 대학 졸업 자격밖에 없었다. 4년제 대졸자만 지원 가능했지만 근사한 승무원이 꼭 되고 싶었다.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1장, 2장, 3장… 6장 째 맨 마지막 자기소개서란. 그는 이렇게 썼다.

 

'사장님께. 학력 조건은 미달이지만 끝까지 시험 볼 기회를 주시면 도전적인 정신으로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진심이 통한 걸까. 며칠 후 서류 합격자 명단에 청년의 이름 ‘주명룡’ 석자가 환히 빛나고 있었다. 이후 연이은 6번의 시험을 계속 통과하며 최종 합격자가 되는 예상외의 영광을 안았다. 스스로 기가 막힌 일이라면서도 끝까지 포기없는 도전을 한 끝에 결국 원하는 목표를 거머쥐게 됐다는 얘기다.

 

그는 선택의 기로에서 늘 '그래, 해보자'하는 마음으로 승부수를 던지며 살아왔다. 어쩌면 가슴 속 저 깊은 곳에서 스멀대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속에서 발견한 인생 2막, 아니 3막의 길. 그는 기적처럼 입사한 회사에서 부러운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오르막을 내달리다 갑자기 사표를 내던진다.

 

1막-항공사 사무장서 美이민 대형 패스트푸드 사업가 변신


항공사 근무 8년째 되던 해였다. 대한항공 국제선 항공기 사무장이라는 화려한 타이틀에 안정적인 생활을 뒤로 하고 그는 회사를 나오기로 결심했다. 1980년 12월, 서른 네살의 한창 젊은 나이였다. 너무 황당한 그의 ‘도발’에 회사에서는 난리가 났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대로 나이만 먹는다는 게 싫어졌어요. 시간이 갈수록 성장하고 직급도 올라가겠죠. 그 이후에는 물음표가 그려지더라고요. ‘딴 생각’이 들었어요. 모든 월급쟁이의 로망인 내 사업을 펼쳐보고 싶다는 욕심이 갑자기 생기더라고요.' 인정받는 직원이었기에 회사는 사표를 반려하며 만류했다. 하지만 그의 고집이 더 셌다.

 

 

2012021021370743994_3.jpg

2005년 10월 서울 시청 앞 세대 통합 걷기대회

 

 

주 씨의 새로운 사업 아이템은 치킨 전문점이었다. 국제선 근무 때 해외를 다니면서 눈여겨 봐둔,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치킨 체인점이었다. 그는 친구와 동업하기 위해 1981년 1월 가족과 미국 이민길에 올랐다. 하지만 자금을 대기로 한 친구가 마음을 바꾸는 바람에 당초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할 수 없이 일을 배우기 위해 식품·샌드위치·커피를 파는 작은 델리숍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운 좋게도 상점 주인이 급한 사정상 헐값에 내놓은 가게를 인수하면서 그토록 꿈꾸던 사업가로의 첫발을 내딛었다. 주씨는 기존 가게 콘셉트를 유지하되 편의점 개념을 접목해 변신시키고 깨끗한 인테리어와 깐깐한 직원 교육을 통해 매출을 2배 이상 올려놨다. 첫 사업의 성적표는 합격점이었다.

 

그러다 1989년 맥도날드 점주로 업종을 바꿨다.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하려면 소상공인 보다는 미국 주류사회에 들어가 미국 기업을 통해 사업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미국에서는 자금이 여의치 않아도 신용으로 사업할 수 있어요. UN본부에서 두 블록 떨어진 곳에 첫 매장을 냈는데 180만달러, 약 19억원 정도가 들어갔어요. 이 자금 가운데 25%만 자력으로 충당했고 나머지는 은행에서 대출받아 갚아나갔죠.'

 

수완이 좋았는지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건너편, 카네기 빌딩 등 뉴욕의 중심지의 맥도날드 매장을 차지하며 사업은 번창했다. 연 매출 1200만 달러, 한화로 약 130억~140억 원이었으니까 햄버거 가게로는 꽤 큰 돈을 벌었다.

 

주 씨는 뉴욕에서 맥도날드 점포 수십개를 운영, 330여명의 종업원을 거느리며 이민 사회에 명성을 떨쳤다. 사업 성공을 바탕으로 뉴욕한인회장을 지냈으며 최고 명예이민자상, 미국 상무성 소수민족기업가상, 뉴욕주지사 최고경영자상 등 각종 상도 여러 차례 거머쥐었다. 물론 남의 나라에 정착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미국 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한국으로 돌아가자고 아내와 참 많이 싸우기도 했단다.

 

'맥도날드 점주가 지켜야 할 7가지 의무가 있어요. 그 중 하나가 지역사회 공헌입니다. 사회봉사를 열심히 하며 부족한 걸 메우기 위해 학교를 다녔어요. 학력에 대한 자격지심도 극복하고 싶었고요. 이민자였지만 유학을 간 거나 다름없을 정도로 공부에 매진했습니다.'

 

 

2012021021370743994_4.jpg

주명룡 회장이 2002년 1월 주도한 중장년층의 경제 사회적 지위 확인을 위한 활동.

 

 

주 씨는 다트머스대학교 소수민족 최고경영자과정, 뉴욕대 국제NGO과정을 수료하고 머시대학대학원 조직통솔학 석사와 머시대학 통상학 명예박사까지 취득했다. 그러면서 주변을 돌아보게 됐다.

 

돈은 많이 벌어 좋은 집에서 좋은 음식을 먹으며 풍족하게 살지만 뭔가 허무함이 밀려왔다. 삶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일이 필요했다. '저는 학생운동이나 인권운동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미국이란 나라에서 가르침을 받았죠. 소수민족으로 살면서 인종 차별에 분노했고 그 분노를 자꾸 나서서 얘기하다 보니 어느 새 대변인이 돼 있더라고요.

 

그렇게 직능단체 장이 되고 뉴욕한인회장이 되고… 사회에 기여하면서 사는 걸 마치 숙명처럼 받아들이게 됐어요.' 뉴욕한인회장을 지낼 무렵이었다. 쉰 한 살의 그에게 어느 날 한 통의 회원가입서가 날아왔다. 미국은퇴자협회(AARP)였다. 그것이 또 다른 삶의 변화를 예고하는 순간일 줄이야.

 

2막-은퇴자 목소리 귀 기울이려 한국에 협회 창립


AARP는 50세 이상 연령층의 권익 옹호활동을 펼치는 비영리 단체(NGO)로 회원 수 4000만여명에 이르는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압력단체’로 통한다. ‘노후에도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사회에 기여할 것’을 목표로 은퇴자 복지 프로그램 운영, 자원봉사 지원, 구직 알선, 노인 복지에 관한 연구 지원 등 전방위적 활동을 펼친다.

 

AARP 회원으로 활동하던 주씨는 이런 단체를 교포사회를 위해 만들어 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뉴욕에서 차로 4시간 거리인 워싱턴DC의 AARP 본사를 20여 회 이상 드나들며 협회를 공부한 뒤 1996년 한인을 위한 대한은퇴자협회(KARP)를 뉴욕에서 결성, 회원 2500명 규모로 키웠다. 그러다 1997년 IMF 외환 위기 이후 많은 중장년 가장이 갑작스러운 실직으로 생활고에 시달린다는 고국의 소식을 접하고 한국에서 은퇴자협회 활동을 하기로 결심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한국에는 이런 성격의 단체가 없었어요. 제도가 잘 갖춰진 미국보다는 한국에서 일하는 것이 보람이 더 클 것 같았죠.' 물론 미국이란 둥지의 편안하고 아늑한 생활을 박차고 나온다는 게 쉽지 않았다. 오랜 시간 주저하던 그는 다시 한 번 용기를 내어 도전했다. 2001년 겨울, 혼자 귀국한 그는 이듬해 1월 한국에서 대한은퇴자협회를 새로 창립했다. 여기에 전력투구하려고 20여년간 해오던 사업까지 정리했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서울 마포 지역에 번드르르한 협회 사무실을 마련했다. 월세 920만원에 직원 15명 급여 등으로 한 달에 나가는 돈만 무려 5000만~7000만원. 미국에서 트렁크 몇 개에 달러를 수북이 담아 왔는데 3년이 지나자 동이 났다. NGO가 무슨 호텔급으로 사무실을 쓰냐며 주변에서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주씨의 생각은 달랐다. 기업도 아닌 신생 NGO라면 처음부터 이목을 끌어야 홍보 효과가 클 것 같았다. 그러나 KARP에 대한 사회적 시선, 회원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3장-연령차별금지법·역모기지 시행도 앞장


KARP의 첫 활동은 연령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정치권이 매일 복지정책을 쏟아내지만 무상급식, 보육 등 주로 젊은 세대 위주였다. '고령자 차별 기업에 대항해 미국에서 1967년 연령차별금지법을 제정하게 한 것이 AARP였어요. 우리나라에서도 7년을 주장해 결국 2009년 연령차별금지법을 시행하게 됐죠. 이로 인해 40세 이상 중·장년층이 취업에서 차별을 받지 않게 된 겁니다.'

 

2007년 상품화돼 4년 만에 가입 건수 7000건을 넘을 정도로 인기를 얻고 있는 역모기지(주택연금)도 KARP의 제안 때문에 실현이 가능했다. 주씨는 '주택을 담보로 제공하고 주택금융공사의 지급 보증 아래 노후에 평생 거주와 평생 연금지급을 보장받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제도냐'며 뿌듯해했다. 그는 에피소드 하나를 들려줬다.


'역모기지 제도를 시행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어요. 시아버지가 자신과 한 마디 상의없이 가입했다며 은행으로 쳐들어온 며느리가 있었습니다. 집은 자식에게 물려줘야 한다는 관념이 뿌리박혀 있어서죠. 그런 탓에 주택연금을 별로 달가워 하지 않는 사람도 많았어요.'

 

정년연장 운동, YOU운동을 통한 세대통합, 세대화합을 부르짖는 그의 사회변화 운동은 계속됐다. 정부의 고령사회 정책을 감시하는 ‘타오름밴가드단’을 조직하기도 했다. ‘타오름주례단’을 만들고 초·중·고의 시니어강사 제도와 시험감독관 활동 등을 통해 고령자의 일자리도 늘리고 있다. 기초노령연금 현실화도 추진 중이다. 이런 아이디어들은 모두 이민생활을 하며 선진국 제도를 체감한 데서 나왔다.

 

재정 자립을 위해 ‘포츈 쿠키’라는 사회적 기업과 커피숍 ‘구디츠’를 운영하고 있지만 협회 활동에 여전히 많은 돈이 들어간다는 게 주씨의 얘기다. '미국에서 크게 번 돈을 거의 다 쏟아 부었죠. 가두 캠페인을 나가려 해도 100여명 직원과 회원들 점심값을 대려면… 어휴, 게다가 협회 성과를 누구 하나 알아주는 이도 없어요. 그렇지만 제도 개선에 기여했으니 위안을 삼는 거죠.'

 

지칠 법도 했지만 그의 인내와 노력은 멈추지 않았다. 그 결과, KARP는 10년 새 전국 22개 지회, 온·오프라인 회원을 합쳐 18만여명을 넘어섰고 활동가만 수천명에 이르는 전문 단체로 성장했다.

 

에필로그-'남은 인생 한국 은퇴문화 정착위해 매진'


'KARP가 AARP처럼 강력한 압력단체로 성장하는 게 쉽지만은 않을 거예요.' 그의 설명에 따르면 양적으로는 성장했지만 회비(연 3만원)를 내고 여러 활동에 참여하는 회원은 1,000명도 채 안 된다.

 

일부 후원자의 도움과 주씨가 모금한 돈으로 겨우 이끌어가는 상황이라는 것. '다양한 사업을 통해 연간 1조원이 넘는 예산을 쓰는 AARP에 비하면 걸음마 단계죠. 국회나 정부를 대상으로 전방위 로비를 벌이는 AARP 수준이 되려면 무엇보다 은퇴자들의 조직화가 이뤄져야 합니다. 회원들의 태도에도 변화가 일어야 은퇴자 세대의 결집이 가능하단 얘기예요.'

 

KARP 창립 초기와 비교해 봐도 사회를 위해 봉사한다는 개념이 아직 약하고 참여도가 저조하다. 일부 취직이나 시켜줄까 해서 찾아오는 이들도 있단다. 주씨는 여전히 KARP에 희망을 걸고 있다. 우리나라도 베이비부머 은퇴자가 급증하는 시점이 된 데다 급속한 고령화를 겪고 있어 노년층 이익단체가 부상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그는 지난 2002년 1월 KARP를 설립한 이후 10년간 줄곧 무급 자원봉사로 협회를 이끌어 왔다. 현재 미국 시민권자를 포기한 상태로 한국인으로서 연금 혜택을 받고 있다. 협회 활동비로 하루 평균 50만~60만원이 나가기 때문에 연금만으로는 생활비와 협회 운영비를 채우기엔 역부족이라고. 그나마 사업가 시절 뉴욕에 마련해 놓은 부동산이 조금 있어 아내로부터 일부를 지원받고 있다.

 

KARP 회장 말고도 하는 일이 많다. 국제노령연맹(IFA) 이사, 노년학회 이사, 노인복지학회 이사, 노동부 사회적기업육성위원회 소위원장, 보건복지부 베이비붐세대 미래구상포럼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대통령 자문 ‘고령화 및 미래사회 위원회’ 위원을 지내기도 했다. 인생2막과 실버시대 및 시니어 일자리를 주제로 한 라디오·케이블 TV의 노년층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해 목소리를 내는 등 늙어가는 한국 사회에 은퇴문화 정착을 위해 달려온 지 11년째.

 

혹시 미국으로 돌아가 다시 편하게 살고 싶지는 않은지 물었다.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힘들다고 포기하는 건 패배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한국에 나와 왜 사서 고생하느냐며 저를 측은하게 보기도 해요. 사회에 기여하는 게 얼마나 행복하고 즐거운지를 그들은 모르니까요.

 

우리 협회로 인해 사회에 조금씩 변화가 생기고 있다는 게 기쁩니다. 언젠가 아내에게 당신 소원 한 가지만 들어 줄 테니 말해보라고 한 적이 있어요. 집으로 오면 안 되겠냐고 하더군요. 함께 있어 주지 못하는 가족에겐 늘 미안한 마음입니다.'

 

그에게 직접 작사한 ‘Hero Song’(히어로송)을 들려달라고 주문했다. 은퇴한 40대 이후 중장년층의 ‘기 살리기 운동’의 일환으로 수년 전 협회 차원에서 만든 노래다. 월드컵송 분위기의 경쾌하고 박력 있는 리듬이 신나는 인생 후반전을 기원해주는 듯하다. '끝나야 끝난 거지, 우린 아직 안 끝났어'라는 노랫말처럼 은퇴는 또 다른 시작이다. 그 역시 인생이 다 할 때까지 은퇴자의 ‘청춘’과 ‘도전’을 노래할 테니까. - 전희진 기자 hsmile@

 

 

<2012.02.14 [이코노믹리뷰] 게재>

 

 

2013.04.25

대한은퇴자협회(KARP)

Comments